독백

#136 – 시작이 두근거렸던 추억

그리 친하지는 않았고 업무 때문에 그녀의 자리에 자주 가게 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밖에서 이렇게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 근처이고 회사 사람이지만 ‘여자’였기 때문에 자주 가던 가게보다 옆 건물 끝에 있는 탭 맥주 집으로 갔다. ‘여자’니까 그냥 소주를 먹기는 좀 분위기가 안 살잖아?
그녀는 안경을 꼈고 어두웠지만 소소한 조명 덕분에 꽤 귀여운 인상이다.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역시 나는 여자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에도 우리 사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회사 동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봄이 되면 내 생일이 다가온다. 그녀와 그녀의 팀 파트너도 나와 친했는데 나에게 생일 선물로 동물 프린팅의 팩을 선물로 주었다. 무슨 그림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우스꽝스러운 그림이었는데, 웃기게도 팩한 내 얼굴을 셀카로 찍어 보내주었다. 연애 시절에도 셀카 사진을 보낸 적이 별로 없는데 왜 그랬지?
그때부터 무슨 느낌이 왔던 걸까?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주말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했고 따뜻한 봄날 북촌을 걷기로 한다.
안국역에서 만나 함께 걷고 구경하고 이야기하다 예전에 갔던 경험이 있는 카페의 옥상 테이블에 앉아 북촌의 풍경과 주변 자연경관을 보면서 좋아진 기분에 취해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생일 즈음이었던 그녀에게 나는 향수를 준비했는데, 향기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조금은 민망했지만, 선물을 준다는 것은 나에게도 행복한 일이다.
인연이라는 건 정말 생각지도 못 한 다양한 상황에서 다가온다. 몇 년간 마주치면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다가오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시작할 때의 마음음 지속하기란 정말 어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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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

2006년부터 블로그를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오지는 않지만 혼자 이 드넓은 인터넷 세상에서 작은 공간을 꾸며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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